본문 바로가기

펜릴's 문화생활

때늦은 '1번가의 기적' 영화에 흐르는 비참함에 대해 이야기 하기.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남자치곤 조금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라(ㅡㅡ;;;)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쉽게 공감하고, 쉽게 반응한다.

울기도 하고, 가볍게 웃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래서 쉬운 녀석. 이라는 소리도 많이 듣곤 하지..

예전에~~ 예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보고 한달동안 후유증을 겪었던 적이 있다.

페테르부르크의 오래되고 음산한 골목골목들과 라스콜리니코프의 창백한 표정.

소피아 마르멜라도바의 여리지만 강한 눈동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우리나라에 들어온적도 없는 그 영화까지 구해다가 본 기억이 있다.

하긴 러시아까지 여행가지 않은게 천만다행이긴 하다.(언젠가는 가겠지만..)


최근엔 문화생활과 담쌓고 사는 터라.. 나를 폐인화 시켜주는 소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얼마전 본 일드 '노다메 칸타빌레'는 무척 강했지만 워낙 코믹이 강한 드라마라 여운이 길지는 못했다.

음악은 깊이 심취되었던 것 같다.

또한 작년 말에 본 '환상의 커플'은 온 국민을 나상실 신드롬에 빠뜨렸던 만큼 나도 헤어나오진 못했지.


이번엔 제대로 감수성을 자극할 영화 '1번가의 기적'을 봤다.

사실 어려운 사람들이 나와서 어렵게 살아가는 신파조의 이야기들.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내가 힘들잖아)

볼까 말까 망설였지만, 우연찮게 기회가 되서 공부하다 말고 들여다 보았다.


스토리 라인은 간단하다. 어떤 철거촌 빈민들과, 그안에서 챔피언을 꿈꾸는 소녀 복서,

그리고 그 곳을 철거하러 왔다가 주민들의 매력에 빠져버린 양아치 한 명.

주인공 두명만 말해도 아~ 대충 어떤 스토리로 진행되겠구나라는 그림이 그려지는 단순한 영화.


임창정은 너무 연기를 맛깔나게 하고

하지원은 여전히 예쁘다...(ㅡㅡ;;;) 사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리고 아역들과 조연들의 감칠나는 사투리 연기들은 정말 영화에 몰입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영화 국제 경쟁력이 있을리 없다. 누군가 호되게 비판했듯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비참함을 극적으로 나타내기에 주력한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비참함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을 그려낸 영화가 아니라

어쩌면 이것이 우리네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빈민과 다름없는 피폐한 시기를 국민 모두가 겪었고

얼마 안있어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기쁨도 잠시 IMF를 대박 맞게 되는

시련이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와 안정된 생활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고, 무역수지가 흑자고 OECD가입국이다 뭐다 이런 것들은 서민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세대가 흘러갈 수록 어려운 사람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선성장 후분배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이번에 당선된 MB역시

시장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경쟁과 자율의 원리에 입각해서 경제정책을 펴겠다고 하니..

당분간 대한민국의 서민경제는 그리 따뜻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전망을 해본다.


이 영화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단순히 비참함을 부각시키는 영화라면, 그리고 억지 눈물을 쥐어짜게 하는 영화라면 그닥 인기 없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현실과 그 극한 현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두려움을

일으키게 한다. 영화치고는 우리 현실 속에서 개연성이 너무나 짙은 것 아닌가..

이 영화가 거창하게 사회고발적 메세지까지 담고 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 말미에서는 모두가 실패한다.

마을은 결국 철거되고, 어떤 아주머니는 분신자살한다. 명란은 매치에서 판정패하고

명란의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필재는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그들에게 맞써 싸우다

조낸 얻어터진다.. 하지만 한 꼬마의 하늘을 나는 꿈은 이루어진다.


물론 엔딩은 틀리다. 엔딩은 해피엔딩.

내가 보기엔 감독이 관객들을 위해

해피엔딩을 끼워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하지만 희망은 가져야 한다는 메세지. 그것이 아이의 하늘을 나는 꿈에 비유해서

말하고 싶었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