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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릴's 신앙

복수와 용서. 그 딜레마 -그 놈 목소리를 보고-

오늘.. 그놈목소리를 봤다.

현상수배극이라고 하던데
설경구는 여전히 소름끼칠정도로 연기를 잘하더라.

유괴살인이라는 파렴치하면서 비열한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되기 힘든 일이다.

나 역시도 그랬고
오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얼마나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는지 몰랐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었더라면 아마 더했을지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땅에 그런 범죄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김래원의 해바라기. 바로 그 영화였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의 원수를 친어머니처럼 대해주는 김해숙..
물론 상황설정에 있어서 두 영화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아들의 원수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각각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바로 복수와 용서다.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유괴나 존속살해, 강간등의 반인륜적인
행위는 사라져야 마땅하나, 크리스챤이라면 마땅히 그러한
죄악들에 대해 진노함과 동시에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나는 배웠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내 일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서도 이렇게 감정의 정리가 안되는
내가.. 과연 내 자식을 죽인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에게 쓴 소리 한마디 던진 친구를 용납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내 자식을 죽인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지.
당신을 못박은 우리를 용서하셨지.

가장 선하시고 정의로우신 그분을 죄악의 끝까지
밀어버린 우리를 그분은 용서하셨다.


나도 이제 용서의 훈련을 해야겠다.
작은 것부터라도 해보는거다.

아니다.
용서는 주님이 하시는거다.
이미 그분이 용서하셨으니..
나는 힘들여 용서할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주님이 하신일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거다.

주님.
이 혼탁해진 사회속에..
정의가 무엇인지.. 중도가 무엇인지.. 선과 악의 개념조차
불분명해진 이 혼란한 세상에서
오직 당신만이 옳습니다.

당신만이 진리이십니다.


당신의 진리로 우리를 다스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