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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릴's 창고

발작적인 미학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는 하나님이라고, 류 상은 말했다
마지막까지 끝끝내 구제불능에
끝끝내 불행했던 이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나는 신 같은건 잘 모른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혹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있어서
그 분이 고모처럼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사람에게 힘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만 자신은 늘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지고
고독하고
패션도 너무나 촌스럽고

그런...
철저하게 바보스러운 사람이라면
나는 그 하나님을...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中  카와지리 쇼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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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영상미.. 특히 색감처리는 참 놀랍다.


발작적이지 않은 미(美)는 예술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라는
브르통의 나디아를 기억한다.

처음으로 영화에서 발작적인 미학을 경험하게 되었던 경험은
10여년 전 폴란드의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bleu'를 봤을 때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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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의 전부였던 줄리엣 비노쉬..ㅠㅠ

물론 그 영화가 유명해지다보니 영화의 티져가 이곳저곳에 포스터와 엽서로
남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아무런 사전적 정보 없이
직접 영화를 보게 되었던 나는 또다른 색채의 미학에
내던져지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때 그랬다.
펄프픽션과 베티블루, 블루를 거쳐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 이르기까지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나, 혹은 영화에 맞추어진 내 입맛이나
내 기준은 강렬한 아름다움이었다. (사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발작적 미학과는
거리가 조금 멀수도 있겠다.)


쥴리엣 비노쉬가 가을의 미소를 닮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던 그 나이에서 이제
10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이런 영화를 들먹이는 까닭은 내가 지금 말하려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Memories of Matsko)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 계보를 잇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영화는 동명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의 인기를 몰아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사실 그리 정감이 가는 제목도 아니고 (혐오스런..이라니. 정말 일본틱하지 않은가?)
거기다가 제목과 시놉시스에서 풍겨나오는 통속적이면서도 비련에 찬 이미지.

뭔가 알 수 없는 끈적한 우울이 머리에서 발가락끝까지 휘감는 분위기를 느끼고는
왜 이런 영화가 인기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가졌다.

티져포스터는 하나같이 원색적이며 유치하기까지 보이는 CG처리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네이버 평점의 신뢰감마저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 영화의 감독인 나카시마 테츠야(불량공주 모모코의 감독이기도 하다. 이 영화도 괜찮았는데)
역시 너무나 통속적이고 너무나도 더럽고 너무나도 어이없는 원작 소설을 보고 직접 마츠코를
만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길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족들과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것이고.
좀 더 그럴싸하게 말하면 혐오스런 일생속에서 찾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과 사랑의 의미
라고 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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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에도 웃지 않는 아버지.




주인공은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병약한 여동생을 가진
한 평범하며 착한 여자이다.
마츠코-라 불리우는 이 여자는 어려서부터 병상에 누워있는 여동생 '쿠미'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집에서의 조심스러운 행동. 가족의 관심....

모든 것은 쿠미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마츠코에겐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은
오직 단 한번 뿐...
그녀의 눈은 아버지의 웃음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아버지는 마츠코에겐 항상
차가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츠코가 성장하여 첫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아버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쿠미에게
마츠코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름을 염려하여, 마츠코를 심하게 나무라게 되고
이 일로 마츠코는 가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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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불치의 병으로 인해 아파하는 동생 쿠미, 그녀는 마츠코의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마츠코를 좋아한다. 후에 쿠미는 언니를 그리워하며 죽게되고.. 마지막 장면에 마츠코가 상상속에서 쿠미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장면은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그런데 쿠미..정말 예쁘다..)






그 뒤부터 마츠코의 안타깝지만 '혐오스러운' 인생이 펼쳐친다.
만나는 남자마다 모두 마츠코를 속인다.
그리고 배신한다.
마츠코는 그 가운데 유흥업소에서 일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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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치 사무라이 픽션을 연상시키게 하는...RICE CAKE


마츠코는 미친듯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도.. 또한 버려지지만
그럴때마다 말한다.


'그땐 정말 제 인생이 끝난줄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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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런 표정과 노래솜씨가 일품인 마츠코씨..ㅋㅋㅋ


그녀의 노래는 그녀가 극한 상황에 있을 때마다 울려나온다.
노래를 잘 불렀던 마츠코.
그녀의 노래는 그녀의 혐오스러운 일생을 꽃밭으로 변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다.
잡초처럼 자라지 않았지만 잡초의 그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그녀의 사랑의 생명력.

하지만 그 사랑이 건강하지 않았던 이유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 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배신당함 끝에 그녀는 자신의 일생을 망치게 된 장본인인
자신의 옛 제자를 만나게 된다.
충동적으로 그와 함께한 잠자리에서 마츠코는 제자인 '류'에게 부탁한다.

'말해줘.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류의 태도도 오래지 않아 여느 남자처럼 그녀에게 폭행을 가하고 그녀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맞아 쓰러지면서 마츠코는 중얼거린다.

'맞아도 좋아. 살해당해도 좋아. 외톨이가 되는 것 보다는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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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어째서...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그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모든 남자에게 버림받은 마츠코.

마지막으로 찾은 고향땅의 강가에서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과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쿠미의 죽음을 듣게 된다.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는 남동생의 차가운 말에 쓸쓸히 걸음을 옮겨 다다른 곳이
자신의 고향의 강과 닮아있는 어느 빈민촌 아파트의 2층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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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강과 닮아 있다는 바로 그 곳...

                                               





그곳에서 그녀는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녀가 죽는 장면은 맨 마지막 장면인데, 배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푸르른 공원의 풀밭과 깨끗한 밤하늘의 별.
쏟아질 것만 같던 빛무리의 향연들.


극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의 가치는 말야.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로 정해지는 게 아냐.
다른 사람에게 뭘 줬는지로 정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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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는 뭘 받았냐가 아니라 뭘 줬냐에 따라 정해지는거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모든 사람이 그녀를 혐오스러워 했고, 시시하다 했고, 지겹다 했고, 쓸모없다 했다.
그녀의 가족과 남동생도 소개하기를 쓸모없는 인생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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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의 유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생을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로 정한다면
정말 쓰레기일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뭘 줬는지로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나는 어떨까.
지금 솔직히 나는 가장 낮은 자존감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나의 포커스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받았는가에 있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주는 것에 대한 기쁨은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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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이건 ? 르네 마그리트???????????

                                         



마츠코. 그녀의 죽음만을 놓고 본다면 정말로 냄새나고 구질구질하고
어이없는 죽음이다.
영화 초반만해도 나는 그녀의 죽음이 그리 인상깊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며..
나도 노래 부르는 삶을 싶어졌다.

상처받고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얻어맞고
세상의 찌꺼기처럼 되어도

그때가 정말 인생의 끝이라 생각되어도
다시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what is a life?
life is a love.
(감옥에 있을 때 나오던 이 노래.. 참 좋더라.)



지독하리만치 역설적이었던 그녀의 삶과 노래.

영화를 보는 초반하는 강렬한 색감때문에 눈이 아파서 눈물 흘렸는데..
후반에는 그와 다른 의미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참 쪽팔렸다.

흐흐흐흐 그런데 OST가 너무 좋아서 사려고 했더만..

아직 국내 발매는 안됐다는구나..
이제 국내개봉 했으니 나오려나... 훗..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장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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